2006. 12. 21.

아이에게 갇힌 틀이란 없는 법이지.

아이에게 으뜸 좋은 놀이는 사람과 뒤섞여 뒹굴고 얘기하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나는 놀이감을 되는 한, 안 사주려 마음 먹었다. 하지만 어디 하루 내리 아이를 돌 볼 수야 있는가? 고민을 거듭하다가, 네살박이들부터 가지고 논다는 짜맞추기 놀이감, Lego를 한 상자 샀다. 누나네가 물려준 Lego가 있기는 하지만, 만들 수 있는 게 몇 개 없어서, 같이 놀아주는 나부터 싫증이 났기 때문에, 자꾸 새 놀이감을 사재지 않아도 되고 새로운 놀이감을 엄마 아빠가 만들어 줄 수도 있고, 나이가 더 들면 저 스스로 만들고 놀 수 있는 물건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네살박이 Lego 놀이감은 생각보다 크기가 훨씬 작았다. 여리고 조막만한 손으로는 짜맞추기가 쉽지 안을 만큼. 하여, 저녁마다 아내와 나는 번갈아 가며 책을 보기도 하고, 느낌대로 붙여보기도 하면서, 아이가 가지고 놀기에 좋을 만한 탈것들을 이것 저것 만들어 주었다. 처음에 아들녀석은 쉽사리 짜맞출 수가 없으니 몇 번 만져 보기만 하다가 이네 덩어리가 큰 Lego에만 마음을 쏟았다.

한데, 옆에서 엄마 아빠가 계속 만지막 거리는 것을 보고 또 보고 하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작은 것들을 제멋대로 때었다 붙였다 잘도 가지고 노는게 아닌가? 그 작은 손이 어른 손 마냥, 까다로운 놀이감에도 그새 젖어든 것이다. 좀 지나서는 큰 놈과 작은 놈들을 함께 가지고 놀기까지 한다.

요사이 큰 Lego 놀이감으로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얘기 인형을 탈것에 꽂아 놓고 부웅 부웅 거린다. 기찻길도 척척 제법 잘 맞추고 논다.


작은 Lego로는 바퀴와 네모틀을 잘 짜맞추고 논다. 아빠 엄마가 만들어준 멋진 탈것도 하루를 못가 부서진다. 이리 때었다 저리 붙였다 아주 바쁘다.


얼마전부터는 물고기와 물고기 눈을 그려넣을 줄 안다. 거의 아빠가 보여준 상어가 많다. 아마도 Wild Chronicles란 National Geographic의 podcast를 자주 보며 그 아름다운 짐승들을 가슴에 깊이 새긴 탓이겠지.

그리고 헤아리고 견주는 것을 어렴풋이 깨우쳤다. 많다, 적다, 크다, 적다, 무섭다, 귀엽다, 빠르다, 느리다를 알아듣고 설명할 줄 안다. 하나, 둘, 셋, 넷 어리숙한 말소리로 스스로 헤아릴 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적지 않고 많다는 것을 어설프나마 깨달은 듯 하다.

참 보고 듣는 것이란 놀라운 배움이다. 하여 아이를 어른 눈으로 재서는 안되다 하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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