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14.

컴퓨터 프로그램의 구조와 해석 (SICP) - 옮긴이 머릿글 초본

 

쉬운말로 옮기려는 노력에 힘을 보태 주었던 분들에게 더는 크게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출판사 홈페이지에도 올라오지 않는 책이고, MIT에서도 이 책으로 가르치지 않은지 오래되었습니다. 
NHN 아카데미에서 일하다보니, 어떤 경로로 알게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제가 이 책의 번역에 참여했다는 사실을 알고, 이 책의 번역서를 들고 와서 공부하겠다는 분을 (아주 드물지만) 만나 뵙게 됩니다. 좋은 책으로 알맞은 공부 방법을 찾도록 도와드리는 게, 지금 제가 하는 일이기 때문에 아래와 같이 말씀 드립니다. 
저는, 제가 참여했던 이 책의 번역서를 추천하지 않습니다. 원서 보세요. 굳이 번역이 필요하면 구글, 파파고를 쓰세요. 그게 낫습니다. 번역이든 창작이든 글이란 술술 읽혀서 이해에 보탬이 되어야 하는데, 제가 이끌어 옮겨 쓴 글은 그 근처도 못갑니다. 의지를 실력이 받쳐주지 못하는데도 고집을 부리다 괴작을 냈습니다. 사놓고 읽는 사람이 드문 책이니 망작에 가깝습니다. (안윤호 씨가 옮겨 쓴 5장은 뺍니다. 제가 번역하거나 검토한 적이 없으므로 평가할 자격도  없습니다.)
이 분야 기술 용어는 원어로 익혀서 아로 새기세요. 정확하게 소통하는 데 더 유리합니다. 저 역시 말하거나 글을 쓸 때, 원어를 훨씬 더 많이 씁니다.

그렇다고 해서, evaluation을 "평가"로 object-oriented를 "객체 지향"으로, assignment를 "배정, 할당"으로 옮겨 쓰는 데 동의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오역한 말로 착각과 오해를 서로 주고 받는 것보다는 원어 그대로를 쓰는 것이 그나마 더 낫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더구나 전산이나 정보기술 분야에는 과대 광고에 가까운 유행어가 널러 퍼져 전문 용어처럼 쓰이는 사례가 많습니다. '클라우드 컴퓨팅'이나 '빅 데이터' 같은 말이 그렇습니다. 이런 용어는 우리말로 옮겨 쓰기도 뭣 합니다. 옮겨서 쓰나 원어를 그대로 쓰나, 같은 말 다른 뜻으로 쓰기 십상입니다.

한편, 프로그램 짜는 공부를 하는데 이 책이나 이 책의 가르침이 낡아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커다란 소프트웨어의 설계를 배우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라서, AI가 코딩을 대신하는 시대로 나아갈 수록 더 유익한 공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단일지 모르지만, AI 세상에서는, 답을 생산하는 공부보다 질문을 생산하는 공부에 무게를 더 두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천만 다행으로, 서문이 졸역을 자랑하지 않고, 원서에 담긴 공부를 소개하고 독려하는 글이라서 아래에 그대로 살려 둡니다. 그러므로 제가 썼던 서문만 읽고 이 번역서로 공부하는 실수를 하지 마십시오.  
2024년, 3월 14일
----
여러분은 운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정답으로 가는 길을 바로 찾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책이 있는지도 모르고 사는 사람도 많은데 어쩌다가 여러분은 정말 좋은 스승을 만난 턱입니다. 그나저나 어떻게 이 책을 알게 되신 거지요? 여태 제가 겪은 바로는 어쩌다가 이 책으로 공부할 기회를 얻기가 그리 흔치는 않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 책에 담긴 컴퓨터 프로그래밍 교육 과정은 한 때 세계 300여 대학에서, 지금도 100여개 넘는 이름난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을 만치, 세계 최고 수준의 프로그래밍 교육이라 일컫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습니다만, 아직도 우리 나라 안에서는 이 책의 값어치가 생각만큼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듯 싶습니다. 어쩌면 이제서야 우리말로 옮겨 쓴 책이 나왔다는 것이 그런 사실을 뒷받침하는게 아닐까 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다시 여쭙건대, 혹시 여러분의 스승이 이 책으로 가르치거나 이 책을 권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정말 좋은 스승을 만났습니다. 마땅히 고마워 해야 일입니다. 그게 아니라, 스스로 더 좋은 가르침을 찾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다면 여러분은 보기 드물게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놀랍습니다.

 제 경우엔 오로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그저 좋은 스승을 만난 덕분에 얻게된 복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서, 지금부터 이 책에 얽힌 저의 옛 이야기를 미주알 고주알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소중한 추억을 누군가에게 도란 도란 얘기한다는 것은 그 추억을 곱씹는 만큼이나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제가 이 책으로 얻게된 깨우침과 즐거움 속으로 천천히 여러분을 꼬드기기에 그 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첫 발을 내디디는 분에게는 제 어리숙했던 시절의 얘기가 자그만 도움이 될런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2009. 5. 6.

Programming in Haskell의 머릿글 원본

작년 12월 12일 즈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안기영입니다.

지금 MS에서 PSA로 일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이번 겨울에도 한국에 12월 11일에 한국에 도착해서 1월 2일까지 있습니다. 이번에는 서울에 계시니까 제가 만나 뵈러 가기가 더 수월할 것 같습니다.

정훈이 형에게 이미 들으셨겠지만, Programming in Haskell 을 우리말로 다 옮겼고 좋은 리뷰어들이 많이 자원한 덕택에 교정 작업도 거의 끝났습니다.

저희가 하스켈 입문서를 본격적으로 우리말로 옮기게 된 계기도 SICP 우리말 판이 나온 것에 고무되었기 때문이므로 추천사는 김재우 부장님께서 꼭 써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IT 실무자가 하스켈에 관심을 가질 만한 이유를 중심으로 쓴 옮긴이 머리말도 거의 완성되어 있으니 살펴보시고 오래 전부터 함수형 언어에 관심을 가지고 강의나 업무 등에 적용해 본 경험을 바탕으로 추천사를 써 주시면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곧 연말이라 바쁘시겠지만 추천사를 연말까지 써 주실 수 있으면 제가 한국에 있을 동안에 원고에 추천사까지 포함해서 출판사에 넘길 수 있기 때문에 마무리 작업에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럼 한국에 도착하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Ahn, Ki Yung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흘렀다. 새로운 일터에 맞추어 살다 보니 글 쓸 샘이 말라 죽었던 것일까. 어쨌거나 이 뜸한 블로그에 글 한 줄 남기기도 벅찼던 게 사실이다. 손도 못 대고 있다가 4월 마지막 밤에, 아래 같은 글로 답신을 보냈다. 곧 출판될 Programming In Haskell이란 책의 머리글 (추천사) 원본.